라우렌시오 2008. 10. 31. 23:33

#대한민국에서 남자로 태어나
아버지 이야기 하나쯤 가슴에 묻지 않은 사람 어디 있을까.
하지만 내게 언제나 아버지는 특별하다.
내게 언제나 아버지는 슬프다.

이제껏 한 평생 자식만을 바라보며 사셨으면서
그 흔한 "직장 잡았으니 용돈 좀 보내라" 한마디 안하신다.
피곤할텐데 집에서 쉬지 왜 내려왔냐며 마음에 없는 소리를 하시곤
돌아가는 길, 못난 아들 손을 꼬옥 잡아주신다.
하나라도 더 주지 못해 안타까워하신다. 평생 그렇게 주시고도


#'아버지' 하면 떠오르는 기억이 하나 있다.
어렸을적, 초등학교 다니던 때로 기억한다. 그것도 저학년
TV 드라마를 통해 본 돈까스라는걸 먹어보고 싶었다.
정말이지 먹고싶었다.
매일 밤 그 돈까스라는 녀석의 맛을 상상하며 입안 가득 고인 침을 꿀꺽 삼키곤 했었다.

"아빠. 저 돈까스 먹고싶어요."
"시험 올백맞으면 사주마"
퍽도 멋없고 무뚝뚝한 요의 말투로 나의 아버지는 답하셨다.

정말 나는 시험에서 올백을 맞았고
드디어 그 돈까스라는 녀석을, 잘사고 부자인 서울사람들만 폼내고 먹을 법한 돈까스라는 녀석을 정복할 때가 되었다.
누나와 나는 아버지 손을 잡고 먼 길을 걸어
어느 경양식 집에 도착했다.
너무 긴장되고 기쁜 나머지
넋을 놓아버렸다.
다만 기억나는 것은 알록달록한 조명, 중국풍의 파티션, 빠알간 식탁보
아마도 중국요리를 겸하는 경양식집이 아니었나 싶다.

아버지께서는 조심스럽게 주문을 하셨다.
"돈까스 두개, 짜장 곱배기 하나"
평생 돈까스라는걸 드셔보신 적이 없는 우리 아버지. 왜 하필 짜장 곱배기람..
흐르지 않을것만 같던 긴 시간이 흐르고 드디어 돈까스라는 녀석이 그 정체를 드러냈다.
후루룩후루룩, 아버지의 짜장 넘기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정말이지 정신없이 먹었다. 정신없이
한창 건장한 나이의 블루워커였던 나의 아버지는 어느새 짜장 곱배기 한 그릇을 다 비우시고
우리에게, 아니, 정확히 나에게였다.
나에게 물으셨다.
"이진아, 맛있냐?"

"네, 맛있어요."
그 맛있는 돈까스를 한조각이라도 더 먹고 싶었던 나는
"아빠, 하나 드셔보세요."라는 말을 하지 못한다.
내 기억 속 첫번째 후회의 순간이었다.

왜 하필 짜장 곱배기였나...
지금 내가 미치도록 좋아하는 짜장 곱배기...
짜장면을 먹을때마다 떠오르는 그 기억
어느때인가 보았던 아버지의 무거운 어깨
IMF를 지나오며 보았던 한없이 작은 아버지의 모습
이러한 기억들이 슬픔으로 투벅투벅 찾아오곤 한다.
왜 하필 짜장 곱배기였나...

음식을 다 먹고 카운터에서 계산을 하시며
아버지는 깜짝 놀라셨다.
잘살고 부자인 서울사람들만 폼내고 먹을 법한 그 돈까스라는 녀석은
짜장 곱배기보다 500원이 싼 가격에 팔리고 있었다.


#시간이 흘러 나는 직장을 잡게 되었다.
아버지께서 그토록 원하시던 직장
하지만 여태 돈까스를 사드리지 못했다.

지난번 언젠가 스테이크는 한번 사드렸었다.
아버지께서는 퍽퍽하다, 양이 적다, 맛이 영 별로다 말씀하시며
접시를 싹싹 비우셨다.

아버지
오래 사세요.
건강하세요.
제 아들과 딸들에게도
그 맛있었던 돈까스 사주세요.
오래 사세요.
꼭 건강하세요.
닭살돋아서 말 못하지만
무척이나 사랑합니다.


#H선생님과 L선생님의 아버지께서 건강이 좋지 않으시단다.
모쪼록 힘내시길, 좋은 일들이 있기를 바라며 마음속으로 응원을 하는데
나의 아버지 모습이 떠올라서 끄적거려본다.
선생님들, 힘내세요. 잘 될거예요. 꼭!


#왜 어머니 얘기는 하지 않으냐고 여성부와 각급 학교 어머니회, 운영위원회 등으로부터 항의를 받을지도 모르겠다.
어렸을적에는 어머니만 좋아했다.
하지만 조금 커보니
아버지도 좋아졌다.
그 뿐이다.
어머니 없이 어찌 아버지 생각을 하겠는가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도 수 없이 많이
내 가슴속에 묻혀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