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감성/음악, 기타
보난자에게 새생명을
라우렌시오
2011. 10. 16. 23:28
작년 축전때 잠시 알바갔다가 돌아온 뒤
근 1년째 방치되어 있던 보난자
처음으로 넥에 레몬오일도 뿌려주고
줄도 끼워주고
"이거 소리가 날까?" 하고 잭을 꼽아 긁어보니
놀랍게도 소리가 난다.
게다가 넥은 아직도 쭉죽 뻗어있고
프렛도 뜨지 않아 버징조차 없다.
아아 명기 보난자.
내가 고1 말이었으니까
1997년이었구나.
친구네 교회에 놀러가서 처음 만져본 일렉트릭 기타는
정말이지 멋졌다.
이전까지 낑낑거리며 했던 통기타의 밴딩도
그녀석에게는 정말 쉬웠다.
그 후로 며칠간 난 끙끙 앓아 누웠고
보다 못한 어머니께서는 (경제적으로 어려웠으며 매우 고지식하셨던) 아버지를 설득해
내게 이 기타를 사주셨다.
정말 몇날며칠을 이녀석을 끌어안고 잤다.
그 이후로 녀석들과 밴드를 시작하게 되었고
싸고 비싸고 좋고 덜 좋은 여러 악기들과 만나고 헤어지는 동안에도
이 녀석은 묵묵히 제 자리를 지켜왔다.
이 기타는 어머니의 기타이다.
눈몰과 한숨으로 나를 키워내셨던 내 어머니의 기타이다.
계속 가지고 가야 할 울 엄마의 기타.
물론 아버지의 기타이기도 하다.
얼마 전 그런 생각을 했었다.
프렛이 닳고 닳아 연주가 힘들어 조각칼로 파냈던 넥을 교체해볼까 하는
고민 끝에 그냥 두기로 했다.
최대한 원형 그대로 간직하고싶다.
그동안 비싼 악기들에 길들여져서 그런지
간만에 들어본 이녀석의 소리는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
오래 간직하기 위해 조금은 손을 봐야겠다.
고등학교 시절,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해야 할 공부는 안하고
이녀석과 녀석들과 살았다.
내 청춘의 고민과 일탈과 방황이 몽땅 새겨져 있는 이녀석
조금 더 아껴줘야겠다.
고마워 보난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