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우렌시오 2013. 4. 22. 21:37



#1

학교 앞에서 우연히 냥이를 만났다.

꽤 추웠고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듯 했는데

분홍 수건에 싸인 채 덜덜 떨고있던 녀석을 한참 고민 끝에 대책없이 데려왔다.

가사실에 데려다두고 우유 하나를 사다 먹여본다. 먹지 않는다. 억지로 먹여본다. 먹지 않는다.

뭐, 중간과정은 다 생략하고

녀석이 조금씩 기운을 차리고 정이 들어갈 즈음 좁고 심심한 가방을 떠나 새로운 가족을 만나게 되었다.

잘 있으려나. 궁금하네.


#2

봄은 봄이다.

지난주 언제인가. 목요일쯤이었나보다.

퇴근 후 집에 오려고 전철을 탔는데 재미있는 청년 셋을 만났다.

지하철 행상이 파는 만득이를 굳이 사서 셋이 번갈아가며 조물딱조물딱

낄낄 웃기도 하고 셋이 얘기 나누는 모습이 꽤나 좋아보였다.

의정부역에서 내려 집으로 걸어오는데 바람은 살살 불고 꽃잎도 날리고

집이 아니라 친구에게 가고싶은 날이었다.


#3

개학 이후 아이들을 돌봐주시던 어머니께서 오늘 군산으로 내려가셨다.

이제 진짜 우리 네 식구의 생활이 시작되는구나.

아내에게 도움이 되는 남편이 되고싶다.


#4

아이들이 조금 더 커줬으면 좋겠다.

함께 악기도 연주하고 산책도 하고 운동도 하고

식당에 가면 맛있는 음식에 집중할 수도 있을테고

뭐, 지금 아니면 할 수 없는 일들도 많지만

그런 생각이 든다.


#5

제일 중요한 일. 딸아이의 수술.

선천적으로 편도와 아데노이드가 크단다. 아니, 컸단다.

전문의가 말하길 이렇게 큰 편도는 처음 봤다고, 애가 많이 힘들었겠다고 하더라.

수면장애클리닉에서의 검사 수치도 최악이었고.

병원과 인연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몇번이나 미뤄진 수술 일정.

그리고 결국 지난 토요일 수술을 마치고 언제 그랬냐는듯 씩씩한 나이롱 환자의 모습을 보여주는 딸.

이제 코도 덜 골고 자다 깨지도 말고 힘내서 더 열심히 놀아야지.

다행이다. 무사히 마쳐서.


#6

시험문제 마무리는 역시 내일로 미뤄야겠지.

마감때가 되어야 발휘되는 참 유용하면서도 2%쯤 아쉬운 내 초능력에 경의를 표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