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들/나한테만 중요한

좋은 아이들과의 수업은 용기를 준다

라우렌시오 2013. 4. 24. 17:17
우리 학교의 시간표 운영은 조금 특이하다.
(다른학교도 이러는거 아닌지... 음)
동아리활동, 즉 CA가 수요일 6, 7교시인데 이게 매주 하는 활동이 아닌지라 평소 수요일 6교시는 수업으로 편성되어 있고 동아리활동을 하게되면 그 수업을 다음주 수요일 7교시에 하게 되어있다. 워. 복잡하다.

여튼 그래서 가끔 수요일 6, 7교시에 같은 반 수업을 이어서 해야할 경우가 있는데
나는 시간표 담당 주제에 이런것도 예상 못하고 수요일 5, 6교시에 블록으로 묶은 기술수업을 넣어버렸다.
그 반이 3학년 7반. 일년에 여서일곱번 정도 수요일 5, 6, 7교시를 나와 수업해야 하는 비운의 반이다.

오늘이 그 날이었다. 세시간 연속수업.
게다가 지난주에 있었던 단축수업으로 인해 시험범위를 맞추려면 꼬박 세시간 수업을 해야하는 상황.

헌데 이녀석들 좀 특이하다. 여지껏 많은 반에서 수업을 해봤지만 이렇게 잘 맞는 반은 처음이다.
(작년 우리반 녀석들이 들으면 서운하겠다. "수업에서 잘 맞는"거다 ;-) )
수업중 오가는 질문들이 딱 그렇다.
'아. 요정도 설명한 시점에서 이런 질문들이 날아와주면 좋을텐데.'
생각하는 질문들이 날아온다.
나는 신이 나서 설명하고 녀석들은 끄덕이며 설명을 듣는다.
자연스레 수업은 즐거워지고 다른반보다 더 많은 내용을 얘기하게 된다.
게다가 수업 진행도 빠르다.

그래도 세시간 연속 수업은 힘들다.
다행히 두시간만에 예정된 진도를 마치고 마지막 시간에는 영상도 보고 얘기를 하며 길고 길었던 세시간의 수업을 무사히 마쳤다.
수업을 마친뒤 앞자리 몇몇 녀석들에게만 들릴정도의 목소리로 읇조렸다.

"그래도 7반이니까 세시간 했다."

그러자 대답이 돌아왔다.

"그래도 기술이니까 세시간 했어요."

이 글을 읽고있는 방랑자께서 저 상황속 나의 입장이라면 어떤 기분을 느꼈을지.
내 기분 역시 딱 그거였다. 뿌듯함.
그리고 고마움. 약간 찡할 정도의 감동.

7반에는 P라는 학생이 있다.
P는 기술선생님이 되고싶다 말한다. 어느 대학에 가서 어떻게 공부하면 되냐고 묻곤 한다.
교사가 되고싶어하는 아이들은 꽤 있었지만 기술교사가 되고싶다고 한 아이는 P가 처음이다. (예전에도 있었나?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거라면 미안)
오늘 P는 아이들이 모두 돌아간 뒤 혼자 남아 실습실을 정리하고 갔다.
그런 P에게 고맙다고 인사했다.
넌 꼭 좋은 선생님이 될거라고 필요한게 있으면 언제든 찾아오라고 얘기하고는 내려보냈다.

가끔 그럼 아이들이 있다.
사소하고 게으르며 보잘것없는, 게다가 교육적이지도 않은 내게
'얼쑤. 나도 꽤 괜찮은 교사잖여? 헛헛'
하는 착각을 심어주는 아이들.
그 착각이 내게 힘이 되고
용기가 된다.
사실은 녀석들이 내게 가르침을 주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좋은 아이들과의 수업은 내게 용기를 준다.
아니,
좋은 아이들은 내게 용기를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