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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들/나한테만 중요한

[펌] 첫 수업 이야기

by 라우렌시오 2013. 3. 5.

다음 카페 "교육공동체 벗" (http://cafe.daum.net/communebut) 의 "낭만샘(안준철)" 님께서 쓰신 글

 

자주 읽고 기억하고자 감히 퍼옴. 문제시 삭제하겠습니다.

 

 

 

“선생님, 오늘 첫날인데 수업해요?”

“그럼 수업해야지, 안 해?”

“에이. 오늘 첫 날인데요.”

“첫날이니까 더 열심히 해야지.”

“그래도 요.”

“걱정 마. 재밌을 거야.”

 

위 대화는 내가 교실에 들어간 뒤 3분 쯤 지난 뒤 한 아이와 오고간 대화다. 그 전에는 다른 한 아이와 이런 대화가 오고갔다.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아이에게)뭐 하냐?”

“(다른 아이가 큰 소리로) 걔 지금 야동 봐요.”

“야동? 좋지. 근데 야동이 아니라 게임하는 것 같은데?”

“(또 다른 아이가)야, 야동 좋단다.”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아이가)그럼 개임은 해도 되요?”

“응. 십 초만.”

 

십초 후

 

“이제 수업해야지. 자리 좀 비켜줄래?”

“조금만 더 하면 안 돼요?”

“좋지. 5초.”

 

오초 후

 

“오초 지난 것 같은데?”

“예. 알았어요. 감사합니다, 선생님.”

“그 말 영어로 해봐.”

“Thank you!”

“선생님에게 말할 때는 뒤에 sir를 붙이는 거야.”

“Thank you, sir!”

“You're well come.”

 

그런 다음 칠판에 30개의 단어를 빼곡이 칠판에 붙인다. 하얀 종이(A4)에 가로로 2개씩 적은 단어를 칼로 잘라 뒷면에 좌석을 붙여서 만든 단어 카드다. 50장을 만드는데 2시간 정도 걸린다. 숙련이 되기 전까지는 조금 더 걸렸지만.

 

“여기 있는 30개의 단어가 이번 주에 여러분과 함께 배울 본문에 나오는 단어들입니다. 영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단어입니다. 전쟁에 나가려면 총이 필요한데 그 총에 총알에 없으면 아무런 쓸모가 없겠지요? 단어는 바로 총알입니다. 한 주일 동안 배울 이 단어를 오늘 한 시간 안에 다 외우게 될 것입니다. 물론 모든 학생은 아니고 절반 이상.”

 

“에이 말도 안 돼요.”

“말이 되는지 안 되는지 내기할까?”

“예. 내기해요.”

“알았어. 이기는 사람이 노래하는 거다.”

“(한 아이가)노래요?”

“(다른 아이가)이기는 사람이요?”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내가 이겼다. 그래서 내가 노래를 불렀다. 싸이먼과 가펑클의 <험한 세상에 다리가 되어>. 아이들이 좀 놀래는 것 같다. 놀랠 일이 그뿐일까? 나는 내기를 하기 전에 먼저 출석을 불렀다. 이름을 부르면 나와 눈을 2초 동안 바라보며 영어 한 문장 씩 말해야한다. 문장이 쉽게 떠오르지 않으면 “I love you." 혹은 “I have a dream."이라고 말하면 된다. 아이들이 신기해하는 눈치다. 신기할 일이 그것뿐일까?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아이들의 눈 속을 들여다본다. 거부반응을 보이는 아이는 딱 두 명. 대수롭지 않게 지나친다. 대수롭게 생각하면 나만 상처 받으니까.

 

해마다 첫 수업시간에 하는 친절서약을 다음 시간으로 미루었다. 이유는? 친절 서약 내용을 아이들 공책에 적어야하는데 공책을 준비해온 학생이 10명 남짓뿐이어서였다. 특성화고 아이들의 형편이 좀 그렇다. 하지만 내일은 다를 것이다.

 

올해 2학년들이 배울 교과서(영어1)는 전문계 특성화고 학생들이 소화하기에는 수준이 턱없이 높다. 내년부터는 전문계 학생용 실용영어를 배운다. 1학년은 올해부터. 교과서가 아닌 다른 자료를 개발하여 수업을 하는 것도 동료교사들과의 합의가 이루어져야만 가능하다. 나는 다른 방법을 택했다. 모든 본문을 퀴즈화한 것이다. 1학기 동안 배울 500여 단어를 파워포인트를 이용하여 그림화한 것도 한 가지 방법이다. 방학 동안에 틈틈히 그 작업을 했다.

 

수업을 마치고 교실을 나오면서 나는 웃었다. 학생들과의 내기에서 이겼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나는 교실에 들어서기 전에 나 자신과 한 가지 약속(다짐)을 했던 것이다. 그것은 수업 시간 중에 다음과 같은 말은 절대 사용하지 하지 않기로.

 

“조용히 해!”

혹은

“Be Qui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