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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들/은퇴한 야구인

포수 이야기

by 라우렌시오 2009. 6. 8.
오오
좋은 글이다 -_-)=b


▲ 죽도록 고생하기(Die Hard)


타격훈련을 마치면 롱토스 훈련이 기다리고 있다. 쉴 만하면 배터리 코치와 함께 블로킹 훈련을 해야 한다. 왼쪽 오른쪽으로 수십번씩 넘어지며 공을 받으면 입에서 단내가 난다. 좌우 순발력을 기르기 위한 토스받기 훈련도 만만치 않다. 강한 체력이 기본인 포수들에게 러닝 또한 빠지지 않는다.

남들이 시원한 라커룸에서 쉬고 있을 때도 포수들은 덕아웃에 나와 앉아 있는다. 상대팀 타격훈련을 보면서 그날 상대타자들의 타격 컨디션을 체크해야 하기 때문이다.

헬멧, 마스크, 프로텍터, 레그가드, 샅보호대, 그리고 미트를 모두 착용하고 뛰어야 하는 경기도 훈련만큼이나 힘들다.

요 즘 투수들은 떨어지는 변화구가 주무기. 좌우로 무릎을 꿇고 쓰러지며 공을 막아야 한다. 파울 타구에 어깨며 정강이, 손목을 맞는 일은 다반사다. 내야 땅볼이 나올 때마다 1루수 백업을 위해 뛰어가야 한다. 홈에서 승부가 벌어질라 치면 무지막지하게 달려드는 주자와 격투기나 다름없는 충돌을 버텨내야 한다.

그렇다고 정신을 놓을 수도 없다. 타자와의 수싸움에서 밀리면 포수로서 자격 미달이다.

SK 박경완은 "한 여름 더블헤더를 뛰고 나면 몸무게가 3㎏씩 빠진다"고 털어놓는다. 지독한 다이어트(Diet)가 절로 된다.


▲ 벙어리 냉가슴(Dumb)

죽도록 고생하지만 알아주는 이는 별로 없다. 벙어리 냉가슴만 앓고 있을 뿐이다.

원 바운드로 들어오는 '폭투'를 빠뜨리면 분명 기록상 투수의 잘못이지만 대부분 포수의 블로킹 잘못으로 돌아오기 일쑤다. 하물며 패스트볼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패스트볼의 대부분은 투수의 사인미스에서 비롯된다. 커브라 믿은 공이 슬라이더로 들어오면 받아낼 재간이 없다.

예민한 투수들을 잘 이끌어 나가려면 투수의 잘못도 모두 포수가 뒤집어써야 한다. 두산 박명환의 전담포수 강인권은 박명환이 고집을 부린 공이 맞았더라도 전부 자신의 잘못으로 돌리기 일쑤다.

포 수는 화려함과도 거리가 멀다. 소리가 펑펑 나도록 공을 받는 포수는 오히려 좋지 않은 포수다. KBO 허운 심판은 "가능한 한 미트를 스트라이크 존에 둔 채 미트 끝으로 '칙칙' 소리가 나게 받는 포수가 좋은 포수다. 한 경기 3개 정도는 볼을 스트라이크로 헷갈리게 만든다"고 전한다.


▲ 그라운드의 연출가(Director)

누구보다 고되고 힘들지만 포수는 그라운드의 지휘자이자 연출자다. 사인을 내는 손끝으로 경기를 지배할 수 있다. 프로야구 8개구단 감독 중 3명이 포수 출신인 것으로 증명될 만큼 경기를 읽는 능력도 누구보다 뛰어나다.

그러나 좋은 포수를 찾기는 쉽지 않다. 포수 출신인 SK 조범현 감독은 "아마야구에서 체계적인 포수 교육을 할 수 있는 지도자가 드물다. 신인이 실전에 투입되기 위해서는 1∼2년 동안 처음부터 다시 가르쳐야 한다"고 전한다.

포수에게도 꿈(Dream)은 있다. 한국시리즈 우승을 확정짓는 공이 미트에 들어왔을 때의 짜릿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승리의 환호와 함께 마운드로 뛰어올라갈 수 있는 영광도 포수만 꿀 수 있는 꿈이다.
[이용균 기자]

[출처] 피쳐이야기|작성자 처음과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