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이다.
한밤의 여흥거리를 찾던 중 예전에 오락실에서 했던 게임들을 해보고 싶어졌다.
요즘은 여러거지 에뮬레이터가 많이 나와서 그리 어렵지 않게 고전게임들을 접할 수 있다.
에뮬레이터를 설치하고 이것저것 롬을 찾아본다.
참 익숙하기도 한 여러 스크린샷들
예전에는 50원씩 넣고 했었는데
어머니께 100원, 200원씩 받아서 자전거 타고 30분도 더 가야 나오는 오락실에 가서 정신없이 하다 오곤 했었는데.
사실 오락실 하면 부모님 몰래 가서 놀았던 기억이 먼저 나야 할텐데
나는 이상하게도 아버지 생각이 먼저 난다.
어렸을 적, 아버지는 아주 가끔씩 우리를 데리고 오락실에 가주셨다.
기분이 괜찮으실때면 한번에 천원어치씩도 시켜주셨다.
그때는 게임에 흠뻑 빠져 몰랐었는데
아버지는 그저 뒷짐을 지고 우리 모습만을 지켜보셨었다.
할아버지께서 일찍 돌아가신 통에 아버지는 남들처럼 젊음을, 청춘을 즐길 여유도 없이
끊임없이 일하며 가족들을 돌보셔야 했다.
결혼 전에는 장남으로서 집안의 기둥 역할을, 결혼 후에는 가장의 역할을
정말 쉴새없이 달려오셨고 그 세월들은 하나하나 깊게 패인 주름 사이에 증거로 남아있다.
우리는 장난감도 없이 놀며 지냈다.
하지만 당신께서는 죽도록 고생만 하셨으면서 우리에게는 이것저것 참 많이도 해주셨다.
수확이 끝나고 굳어버린 논에 구덩이를 파내 그네를 만들어 주셨고
겨울에 눈이 내리면 그 벌판에서 비료푸대 썰매를 끝도 없이 끌어주셨다.
나무를 깎아 야구방망이를 만들어 주셨고
우리 아버지가 만들어 주신 연은 세상에서 가장 높게 날았다.
두두두두 입으로 쏴도 총알이 나가지 않는 나무총, 빙글빙글 잘도 돌던 팽이, 아무도 뒤집을 수 없었던 딱지
셀 수 없이 많은 즐거움들은 나의 아버지로부터 시작되었다.
요즘 나는 참 무섭다.
마냥 무섭기만 하던 아버지였는데, 이제는 하나하나 온통 고마움과 추억으로 변해가고 있다.
과자통 속에 쿠키가 몇개 남지 않아서야 조금씩 쪼개어 먹던 것 처럼
아버지에 대한 마음이 커질수록 함께 할 수 있는 날도 점점 줄어감을 느낀다.
내가 어른이 되었다면 그건
첫 몽정을 한 날도, 첫키스를 한 날도, 처음 면도를 한 날도 아니다.
아버지에게 고마움과 죄송함을 느끼게 된 그 날이라 믿는다.
다음주는 아버지를 뵈러 간다.
오늘 벼룩시장에서 3,300원에 구입한 화상캠을 달아드리고
화상채팅 하는법을 알려드릴 셈이다.
혹시라도 이 글을 어머니께서 보실까 걱정된다.
사실 어머니 얘기는 너무나 길고 길어서 죽을때까지 다 적지 못할거다.
그래.
다음주에는 부모님을 뵈러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