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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있었던 일이다.
퇴근 후 저녁거리라도 장만할 요량으로 동네 마트에 갔다.
보통은 아파트 단지 내의 조그만 가게에 가지만 어제는 굴이 먹고싶어서 조금 떨어진 L마트에 갔다.
L마트는 흔히 말하는 SSM, 기업형 슈퍼마켓이다.
큰 L마트에서 팔고 있는 상품들과 비슷하게 구색을 갖춰놓았기에 사실 없는 거 빼고 웬만한건 다 있는 편이다.
L마트에서 횡단보도를 하나 건너면 H마트가 있다.
H마트는 그냥 이름 없는 동네 큰 슈퍼마켓이다.
길 건너는게 번거롭다는 이유로, 그정도 규모면 거기서 거기라는 이유로 그냥 L마트에 간다.
마트에서 이것저것 물건을 집어들었다.
빼빼로데이 전날이라 그런지 과자를 사러 온 손님들이 많다. 이제는 지나치기로 결심한 그 이벤트, 패스.
계산대에 섰다. 인사를 하고 산 것들을 꺼내 계산대 위에 올려둔다.
친절하게 계산해 주시는 계산원 아주머니. 이모님 정도라고 불러도 될 법한 나이대의 여자분이시다.
그런데 갑자기 정적이 흐른다.
옆 계산대에서 점장으로 보이는 사람이 계산원 아주머니를 나무라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모르지만 이것 먼저 찍고 저것을 찍어야 하는데 왜 저것 먼저 찍었냐며, 이 내용을 모르고 있었냐고 다그치는 것이었다.
키가 크고 안경을 쓴 굵은 목소리의 남자는 손에 든 과자 묶음(빼빼로데이는 개뿔)을 휙휙 휘두르며 위협적으로 소리친다.
손님이 보는 앞에서, 손님의 물건을 계산하고 있는 계산원에게
내 앞 계산대의 아주머니도 손을 멈추었다. 무슨 일이 생기는거 아닌가 긴장한 기색이 역력하다.
나는 대부분의 경우 손님의 신분으로 살아가지만 손님이 왕이다 라는 얘기는 싫다.
한가지 덧붙이면 좋다. 손님도 왕이고 직원도 왕이다 라고
(이 말이 군말 말고 처먹고 맛 없으면 나가라, 너 아니어도 손님은 많다 식의 유명 맛집에 해당되는 얘기가 아님을 다들 알 것이다.)
누군가를 처음 만나 같이 음식점에 가보면 그 사람을 다시 만나도 좋을것인지, 그만 만나야 할 것이지 쉽게 알 수 있다.
어이. 이보슈. 반말을 찍찍 해가며 명령하듯 식당 종업원을 대하는 사람들이 있다. 심지어는 그릇이나 계산서를 휙휙 집어던지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들의 경우 내 앞에서 살살 웃고 있다 하더라고 십중팔구 언젠가 내 등을 찌를 수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도 있다. 반찬이며 음식이 나올때마다 고맙다고 인사하고 다 먹은 후 맛있게 먹었다고 한마디를 건넬 줄 아는 사람.
이런 사람들은 보통 오래 사귀어도 나쁘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사람들 사이에 비겁함이 깊어져가고 있다. 이 몹쓸 정권도 벌써 7년째. 세상이 점점 썩어가고 있다.
자신의 식구이자 가족이어야 할 직원에게 소리치고 면박을 주며 처음 보는 고객님께만 친절한 사람이 정말 친절한 사람인가 생각해본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절대 아니다.
그건 가면이고 가식이고 거짓이자 위선이다.
물론 지금 나는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 계산원이 몇번이나 같은 실수를 했다거나 그 점장의 컨디션이 너무너무 최악이어서 유난히 짜증스러운 날이었다거나 뭐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시 가고싶지는 않다.
조금 더 걷자. 길을 건너자. 혹은 많이 덜 걷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