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주 가기 전에 올림픽 소식이 궁금해 잠시 텔레비전을 켰다.
대통령배 고교 야구 준결승 경기가 한창이었다.
볼 것도 없이 금새 채널을 돌렸다.
한창때는 사회인 야구팀을 서너개씩 하던 나름 야구환자였는데
팀은 커녕 중계도 안 본지 몇 해 됐다.
가끔 채널을 돌리다 고교 야구 중계를 해주기라도 하면 기특하고 안쓰러운 마음으로 응원하며 보곤 했었는데
이제는 그것도 안 할 셈이다.
야구에 흥미를 잃은 이유는 간단하다.
인성과 팬 서비스 정신이 형편없는 선수들이 너무 많다.
사인을 받기 위해 몇시간을 기다린 꼬꼬마 팬들을 대차게 외면했던 그들이 꽤 많은 연봉을 받고
은퇴 후에는 방송에 나오는가 하면 지도자가 되기도 한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많다.
고양 구장에서 만났던 박정음 선수는 참 친절하고 따뜻했다. 덕분에 나와 우리 아이들은 예쁜 사진 한장과 함께 멋진 추억을 간직하고 있다. 또한 팬들을 살뜰히 챙기기로 유명한 몇몇 선수들의 이야기는 아는 사람은 다 안다.
하지만 잊을만하면 터지는 야구판의 사건사고 소식들에 실망감이 드는 것은 나 뿐인가.
그럼에도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학교에서 동아리 야구반을 맡고 있다.
매년 참가하는 스포츠클럽 연식야구 대회에 참가해 얼마 전 모 고등학교 운동장에서 예선 마지막 경기를 치렀다.
그런데 한참 경기가 진행되는 중 그 학교 선수로 보이는 아이들이 하나 둘 훈련을 위해 모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모든 아이들이 경기가 진행중인 우리의 그라운드를 천천히, 매우 건들거리는 자세로 건너 지나갔다. 몇걸음만 더 걸으면 운동장을 돌아 지날 수 있었지만 누구도 그러지 않았다.
비록 정식 선수는 아니지만 우리는 누구보다 심각하고 진지하게 경쟁하는 중이었다.
그 운동장에서 자신의 인생을 걸고 땀을 흘리는 그 아이들이 정작 다른 이들을 무시하는 그 행태에 나는 화가 났다.
적어도 고교 야구에는 낭만과 예의, 열정과 꿈이 있을거라 믿었던 나의 착각은 비죽비죽 웃으며 그라운드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건장하고 잘생긴 미래의 KBO 꿈나무들 덕에 산산히 부서졌다.
편협한 시각으로 성급하게 그들을 평가한 것일수도 있다.
하지만 하나를 보면 열을 아는 법이다.
글로 표현하기 어렵지만 이제 스무살도 안 된 그 아이들의 표정과 몸짓에는 상대에 대한 예의와 배려 같은 것들 대신 오만함과 뻣뻣함이 가득했다.
나는 내 판단이 옳았다고 믿는다.
당신들 중 꽤 많은 이들은 응원받고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도 오랫동안 야구를 거부할 것이다.
